그럼에도 불구, 김지영 있음에…국립발레단 ‘마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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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 김지영 있음에…국립발레단 ‘마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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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31 17:32:02 | 수정 : 2018-10-31 17: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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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타하리’. (국립발레단 제공=뉴시스)
흰색과 검은색, 네덜란드의 여성 스파이로 알려진 마타 하리(1876~1917)의 삶은 화려한 낮과 어두운 밤을 오갔다. 거짓말 같은 그녀의 삶은 주변보다 두드러지는 양각, 양각과 달리 문양 자체가 파이고 판면이 돌출되는 음각으로 정확히 나뉜다.

빛과 어둠은 이탈리아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57)가 안무한 국립발레단 신작 ‘마타하리’에서도 키워드다. 30일 프레스리허설로 처음 공개된 ‘마타하리’에는 종종 하얀 조명이 꿈결처럼 눈부시게 쏟아졌지만, 무대를 지배하는 주요색은 검정이었다. 비극으로 귀결되는 미욱한 정서가 내내 굽이쳤다. 극의 장소 등 배경도 주로 암흑에 프로젝트로 쏜 하얀 선으로 특정했다.

매끈한 수작이라고 추어올리기에는 조심스런 작품이다. 마타하리와 얽히는 남성이 한 두 명이 아닌 것을 비롯, 주요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마타하리에 대해 알고 있어도 세세한 이야기를 톺아보는 것이 힘들다.

기존과 다른 마타하리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그러나 의미 있다. 관능적인 분위기와 처연한 정서에 방점이 찍힌 존재가 마타 하리이기 때문이다. 발레 ‘마타하리’에는 근육이 보인다. 발레리나의 몸을 빌려서 가능했다. 몸으로 쓴 마타하리의 일대기라고 할까. 말, 노래가 없어도 그녀의 역경, 고뇌가 더 잘 보였다.

이렇게 ‘마타하리’는 단순히 팜 파탈을 내세운 여성의 이야기가 아닌, 세간의 편견과 오해를 견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됐다. 특히 김지영(40)의 마타하리여서 가능했다. 불혹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그녀의 몸과 얼굴 그리고 표현력에서는 세월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노련함과 성숙미가 묻어나온다.

발레 ‘마타하리’. (국립발레단 제공=뉴시스)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활약한 김지영은 몸이 열려 있어, 고전발레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춤에 최적화돼 있다. ‘마타하리’의 다양한 춤 스타일이 김지영과 맞는 이유다. 자넬라가 1993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과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그가 김지영을 비롯한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보고, 25년 만에 전면 탈바꿈했다.

그만큼 몸의 선, 고전 발레 형식을 깨는 유연한 동작, 무대 동선들이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에게 어색하지 않다. 아시아의 춤을 자신의 방식으로 선보이는 마타하리의 대표 장면 ‘베일의 춤’도 마찬가지다.

남자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여성 해방’을 꿈꾼 마타하리의 모습은 남성 군무진에 둘러싸여 공중을 나는 동작으로 표현되고, ‘태양 아래 나비처럼 살고 싶었다’는 마타하리의 실제 바람은 파리 생 라자르 감옥 12호 속 몽환적인 동작으로 재현된다.

사형장의 칠흑 같은 어둠이 임하기 전 불길한 동화 같다. 무거운 솜사탕을 들고 있는 듯 침전하면서 부유하는 정서와 몸짓은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해 찬란하면서도 무기력한, 소리 없는 아우성.

이를 표현한 김지영의 재발견이라고 감히 할 만하다. 8할에 가깝게 무대에 등장하는 김지영은 성숙한 연기력도 강점이라 안무부터 소품, 극적 구성까지 연극성이 도드라지는 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간다.

김지영은 30년간 발레계에서 세월의 흔적을 몸으로 이겨냈다. 비슷한 시기에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에 객원무용수로 출연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39)가 여전히 세계적인 기량을 지니고 있어서 크게 주목 받고 있는데, 우리 곁에는 그녀보다 한 살 많은 김지영이 있었다.

결국 발레 ‘마타하리’는 몇몇의 단점에도 몸으로 쓴 시대의 자화상으로 대해도 무방하다. 냉전이 극에 달한 시대에 연합군과 독일을 오가며 희생양이 된 그녀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모든 영역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삶의 냉전을 견디는 지금의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유럽의 격동사가 녹아 있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이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꿈틀거리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래서 국립발레단이 신작을 만드는 것에 당위성이 부여된다. 고전 발레의 재현도 중요하지만, 평탄하지 않은 길이라도 발레단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무게감 있는 일이다.

또 다른 마타 하리 역에는 박슬기와 신승원이 캐스팅됐다. 김지영이 마타하리를 맡는 날 박슬기는 마타 하리의 프랑스 발레단 발레 뤼스 합류를 거절한 카르사비나, 신승원은 마타하리를 잇는 스타 콜레트를 연기한다. 마타하리의 전 남편 매클라우드 역에 이영철, 송정빈, 김희현, 마타 하리가 사랑한 남자인 마슬로프 역에 이재우, 김기완, 박종석이 캐스팅되는 등 국립발레단 간판이 총출동한다.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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