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만세" 부르다 옥고 치른 '배화여학교 6인' 98년 만에 독립운동 인정y
사회

"독립 만세" 부르다 옥고 치른 '배화여학교 6인' 98년 만에 독립운동 인정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로 기사보내기 미투데이로 기사보내기 네이버로 기사보내기 구글로 기사보내기 싸이월드로 기사보내기

입력 : 2018-08-13 16:26:55 | 수정 : 2018-08-13 17:19:18

프린트 | 기사 스크랩     글자작게글자크게


국가보훈처, 73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177명 포상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당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경화·박양순·성혜자·안희경·안옥자·소은명. (국가보훈처 제공)
오는 15일 73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배화여학교 6인과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 등 177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애족장 62), 건국포장 26명, 대통령표창 58명이다.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여성은 26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73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한다.

국가보훈처는 이번에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3개월인 최소 수형 옥고 기준을 폐지해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면 포상했고, 독립운동에 참여해 퇴학을 당했다면 학생 신분을 감안해 포상했다. 실형을 받지 않았더라도 적극적인 독립운동 활동 내용이 분명하면 포상을 전향적으로 고려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을 확대하기 위한 전문가 연구용역을 올해 1월 12일부터 5월 12일까지 진행해 202명을 발굴했다. 추가 조사와 검증을 거쳐 이 가운데 26명을 포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을 시작한 이래 건국훈장 1만 912명, 건국포장 1253명, 대통령표창 2887명 등 총 1만 5052명이다. 여성이 325명 남성이 1만 4727명이다.

아래는 국가보훈처가 밝힌 일부 포상자의 주요 공적이다.

일제의 철통감시 속, 과감하게 3·1운동을 재현한 배화여고 6인의 소녀들
3·1운동 1주년을 맞아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붙잡혀 옥고를 치른 6명의 학생들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한다.

1920년 3월 1일 서울 배화여학교 학생들이 일제히 학교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이 이들 중 수십 명을 붙잡았고 그해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 회부했다. 국가보훈처는 이 가운데 김경화·박양순·성혜자·소은명·안옥자·안희경 등의 공적과 옥고를 확인해 포상을 결정했다.

학생들은 치밀한 사전 준비를 거쳐 당일 등교하자마자 학교 기숙사 뒷산과 교정에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고 1년 전의 거족적인 3·1운동을 재현하였다. 포상자 6명은 거의 10대 후반의 어린 학생들로서, 최연소자인 소은명 선생의 경우 16세에 불과했다. 3·1운동 1주년을 맞아 일제가 만세 시위 재연을 우려해 서울시내 곳곳에서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어린 학생들이 과감하게 결행한 만세 시위라는 점이 주목을 받는다.

서간도 무장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한 독립군의 어머니, 허은 여사
만주에서 독립군 항일투쟁 지원에 헌신한 허은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여사는 재종조부인 왕산 허위 선생(1962년 대한민국장)이 1908년 순국한 뒤 줄곧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던 중 만 6세가 되던 1915년에 일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했다.

이후 부민단 등 현지의 독립운동 단체가 주관하는 국치기념일(8.29)과 개천절 행사 등에 참여해 국치가와 애국가를 부르며 민족·독립의식을 키웠고 16세가 되는 1922년 이상룡(1962년 독립장)의 손자인 이병화(1962년 독립장)와 결혼했다.

이후 1932년 귀국할 때까지 시댁 어른들의 독립운동을 보필하면서, 서로군정서 회의 때마다 독립운동가들의 조석을 조달하고 군정서의 독립군들이 입을 군복을 만들어 보급하는 등 서간도 무장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하였다. 여사의 친정과 시댁 모두 여럿이 서훈된 대표적인 독립운동 명문가로 손꼽힌다.

이상룡 선생이 남긴 '석주유고', 시아버지 이준형 선생의 '유서(1942)',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등의 자료에서 활동내용을 확인해 포상을 한다.

서정적인 시풍으로 일제에 저항의식을 표출한 김윤식(김영랑) 선생
전남 강진에서 독립만세운동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김윤식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한다. 우리에게는 김영랑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생은 1919년 3월 25일 고향인 강진군 강진면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제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30년대 '독을 차고', '가야금'등의 시를 발표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군자금 모집하다 체포되어 교형을 받고 순국한 의병 계석노 선생
평안북도 의주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계석노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한다. 선생은 평북 선천군 심천면 출신으로 1908년 10월부터 1909년 3월 사이에 평북 의주·선천·철산군 일대에서 유상돈의 부하로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항전을 위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교형을 받고 불과 34살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1910년 6월 20일 관보 등 자료에서 선생의 순국 사실을 확인했다. 의진의 지휘관인 유상돈 의병장에게 2011년 독립장을 추서했고 함께 활동한 이여숭·차연욱·이정식 선생에게도 이번에 애국장을 추서한다.

법정에서 당당하게 독립만세 이유를 밝힌 곽영선 선생
황해도 신천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곽영선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선생은 1919년 3월 24일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중 고향인 황해도 신천군 신천읍에서 만세운동 준비를 위해 태극기를 만들고 3월 27일 신천읍 장날에 동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을 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그해 11월 법정에서 자신은 인도정의, 민족자결에 의해 조선인민의 인성으로 당연히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이며 시위 참여는 일본에 반항하는데 있지 않고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밝혀 일제 판사를 당혹케 했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1919년 11월 판결문 등에서 만세시위 활동내용을 확인해 추진했다. 1993년 애국장을 받은 곽림대 선생의 딸로, 부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서훈된 흔치 않은 사례이다.

군자금 모집하다 중형을 받은 열혈 독립군 소대장 한성호 선생
평안북도 일대에서 무장 독립군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중형을 받은 한성호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다. 선생은 1920년 3월 평북 의주에서 조직한 천마산대의 소대장으로 동년 4월 평북 구성에서 현지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천마산대는 3·1운동 직후 평북 의주의 천마산을 근거지로 최시흥(62·독립장) 등 대한제국 군인 출신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항일 무장단체로, 화승총과 일경으로부터 노획한 총검으로 무장하고 여러 차례 유격전을 벌여 1920년 이후 남만주의 광복군사령부에 흡수될 때까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가출옥관계서류(국가기록원)」, 」대판조일신문 한국관계기사집(독립기념관)' 등의 자료에서 천마산대의 활동내용을 확인해 추서를 진행했다.

비밀결사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5인
평안남도 순천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5명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한다.

최복길·김경신·김화자·옥순영·이관옥 선생 등은 1919년 음력 10월 평남 순천에서 윤찬복(1990·애족장) 등과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회원들로부터 의무금 등을 징수하는 방법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밀사를 통해 상해의 임시정부에 전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 단체의 주모자로 회계를 맡았던 최복길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회원으로 참여해 독립운동 자금을 출연한 나머지 네 분에겐 대통령표창을 추서한다. 이들에 대한 포상은 국가보훈처가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육군성, 1921.2.28)' 등의 자료에서 공적내용을 확인하고 진행했다.

독립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은 혁명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기지 개척을 조력하고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한 이은숙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여사는 1889년 충남 공주 출신으로 1908년 10월 20일 서울 상동예배당에서 우당 이회영과 혼례를 올렸다.

그 후 1910년 남편 일가족과 함께 중국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사업을 조력하였다. 이후 1919년 남편과 함께 다시 중국 북경으로 거처를 옮겨 현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후원하고 1925년에 귀국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남편 이회영이 1932년 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대련행 기선을 타고 만주로 가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 순국한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 이규창(1965년 독립장)이 1935년 3월 상해에서 친일파 처단에 성공하고 피신 중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 뒤 이듬해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3년을 받고 복역할 때도 자식의 옥바라지를 하며, 조국독립의 대의를 간직한 채 꿋꿋이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저작권자 ⓒ 뉴스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핫이슈

5년간 가스보일러 사고로 49명 사상…일산화탄소 중독 주의
최근 5년간 가스보일러 사고로 14명이 목숨을 잃고 35명이 다...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 사상자 18명 발생…소방·경찰, 10일 합동감식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미등록 미얀마 노동자, 단속 중 사망 '무혐의'…시민단체, "진상조사하라" 규탄
올해 8월 22일 경기도 김포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딴저테이...
"적폐 행태"라며 경찰 고발하려던 이재명, 이해찬 만류에'멈칫'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이 이 지사를 수사한 경기도 분당경찰서를 검...
조명기구 배터리에 금괴 은닉해 1.8톤 밀수입 일당 적발
홍콩에서 수입해오는 조명기구 배터리 내부에 금괴를 숨기는 수법으...
"효성 향응 받은 한수원 직원들 납품 비리 묵인"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16명이 효성으로부터 향응을 받고 납품 비리...
노동부, ‘전 직원 폭행’ 양진호 실소유 회사 특별근로감독 착수
전 직원을 폭행한 영상 등이 공개돼 물의를 빚고 있는 양진호 한...
음주는 살인이라더니…이용주 의원, 음주운전 하다 적발
서울 강남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경찰 단...
서울교통공사 노조, 조선·중앙·동아 언론중재위 제소
최근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서울교...
‘차량용 소화기 설치’ 모든 차량 의무화…승용차 내 손닿는 곳에 설치
차량용 소화기 설치 의무가 기존 7인승 이상에서 모든 차량으로 ...
IP카메라로 사생활 엿보고 불법 촬영한 남성 10명 검거
반려동물 모니터링 사이트를 해킹한 후 회원들의 IP카메라에 무단...